전통 공예

전통 가구의 장석(장식 철물), 어떻게 복원할까?

info-ytt 2026. 3. 13. 10:00

목차

  1. 장석이란 무엇인가 — 『경국대전』부터 국가무형유산까지, 역사로 읽는 장석의 정체
  2. 장석의 종류와 지역별 차이 — 경기·경상·전라도 가구는 왜 다르게 생겼는가
  3. 장석 손상의 실체 — 황동 녹청과 철 부식은 어떻게 다르게 진행되는가
  4. 두석장의 손, 보존과학의 눈 — 전통 단조 기법과 현대 비파괴 분석이 협력하는 복원 현장
  5. 복원인가, 위조인가 — 장석 재제작의 윤리 기준과 가역성 원칙
  6. 장석 복원이 지금 왜 중요한가 — 소멸 위기의 두석 기술과 계승의 현실

두석장

1. 장석이란 무엇인가 — 『경국대전』부터 국가무형유산까지, 역사로 읽는 장석의 정체

전통 목가구를 처음 마주했을 때 시선을 먼저 잡아끄는 것은 종종 나무가 아니라 금속이다. 문짝 중앙에 놓인 물고기 모양의 자물쇠, 모서리를 감싸는 황동빛 감잡이, 서랍에 달린 나비 형태의 고리 — 이 작은 금속 조각들이 장석(裝錫)이다. 그런데 이 이름의 기원은 생각보다 오래되고 공식적이다.

조선시대 대표적인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 의하면 장석을 만드는 두석장(豆錫匠)은 공조(工曹)와 상의원(尙衣院)에 각각 4명씩 배속되어 있었다. 공조는 국가의 토목과 수공업을 총괄하는 관청이며, 상의원은 왕실의 복식과 기물 제작을 담당하는 부서다. 즉 두석장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고용한 금속 장식 전문 장인이었다. 영조가 계비인 정순왕후와 혼례를 치르는 가례 과정을 기록한 『영조정순왕후 가례도감의궤』에는 당시 기물 제작에 8명의 두석장이 동원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왕실의 혼례 기물을 완성하는 마지막 손길이 두석장의 것이었다는 이 기록은, 장석이 단순한 부품이 아니었음을 문헌으로 증명한다.

장석은 목가구나 건조물에 장식·개용으로 부착하는 금속이다. 결구나 모서리의 보강을 위한 것이지만 개폐 장치인 자물쇠도 여기에 포함된다. 조선 시대에는 황동제 장석이 가구의 구조에 따라 부착되어 최소한의 장식 구실을 겸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표현은 '최소한의 장식'이다. 조선 가구는 나무의 자연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설계되었고, 장석은 그 위에서 과하지 않게 기능과 미감을 동시에 수행하는 절제된 장치로 자리 잡았다.

재료의 역사도 명확한 흐름이 있다. 고대에는 기능 위주의 철제 장석이 주로 제작되었고, 조선시대에 들어서는 후기까지 황동제 장석이 가구의 구조에 따라 간결하고 조화 있게 부착되었다. 조선 말기 이후부터는 수요층이 크게 저변화되고 민간의 정서를 반영하는 벽사·기복적인 상징성을 지닌 각종 문양들이 등장하면서 재료도 백동으로 바뀌는 새로운 경향이 대두되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니다. 가구 소비층이 왕실·사대부에서 일반 민간으로 확대되면서 기능 중심에서 장식 중심으로 장석의 성격이 이동한 사회사적 전환이기도 하다.

오늘날 두석장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국가유산청에서 2000년 3월에 조사한 보고서에 의하면, 장석(裝錫)이란 목공품 같은 생활용품을 제작할 때에 기능의 필요성에 의해 목공예품 몸체에 부착하는 금속재료의 장식을 통틀어 말한다. 이 공식 정의는 장석이 단독으로 완성되는 물건이 아니라, 나무와 결합했을 때 비로소 의미를 갖는 관계적 존재라는 사실을 담고 있다.

 

2. 장석의 종류와 지역별 차이 — 경기·경상·전라도 가구는 왜 다르게 생겼는가

장석의 종류는 기능과 위치에 따라 매우 세밀하게 나뉜다. 이 분류를 이해하는 것은 단순한 명칭 암기가 아니라 전통 가구의 구조와 사용 방식 전체를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 종류에는 암수 두 개의 쇠붙이를 끼워 맞추는 돌쩌귀와 날개판의 노출여부에 따라 구분되는 노출경첩·숨은경첩이 있다. 조선시대 가구에서는 노출경첩이 대종을 이루는 반면, 숨은경첩은 조선 말기 이후에 제작된 의걸이장이나 문갑 등에서 간혹 눈에 뜨일 뿐이다. 노출경첩은 그 형태에 따라 다시 동그레경첩·약과경첩·병풍이중경첩·제비추리경첩·운문경첩·불로초경첩·난(蘭)경첩·卍자형경첩·호리병경첩·호패경첩·수팔련경첩·남대문경첩·나비경첩·박쥐경첩·칠보경첩 등으로 분류된다. 경첩 하나만으로 이처럼 다양한 형태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장석이 얼마나 정교하게 분화된 공예 체계를 갖추고 있었는지를 보여준다.

자물쇠는 장석 가운데 가장 복잡한 내부 구조를 지닌다. 자물쇠는 귀자(貴字)쇠통, 비각쇠통, 거북장쇠통, 타래쇠통, 네모희자쇠통 등이 있다. 이 각각의 형태는 단순히 생김새의 차이가 아니라, 열쇠를 삽입하는 방향과 잠금 원리 자체가 달라지는 구조적 차이를 반영한다. 장식처럼 보이는 광두정(머리가 넓은 못)을 살짝 밀어야 열쇠 구멍이 나타나는 자물쇠는 열쇠를 집어넣고 각도와 방향을 여러 차례 바꾸며 밀고 돌려야 한다. 현대의 자물쇠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보안 설계 원리가 황동 한 덩어리 안에 담겨 있었던 것이다.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장석의 지역성이다. 같은 조선 시대 가구라도 제작된 지역에 따라 장석의 형태와 밀도가 뚜렷하게 달라진다. 각 지방마다 특성을 보이는데, 경기도 지방 목가구에는 둥글거나 네모난 단순한 형태의 기능적인 장석이 사용되고, 경상도 지방에서는 꽃과 새, 동물 문양으로 장식적인 면이 강조되며, 전라도 지방에서는 묵직하고 안정된 장석들이 사용되었다. 이 지역성은 복원 작업에서 결정적인 판단 기준이 된다. 원래 장석이 분실된 반닫이를 복원할 때, 경기도 제작 가구에 경상도 양식의 화려한 장석을 달면 가구의 문화적 정체성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북부지방의 침엽수 목재로 만든 반닫이(평양반닫이 등)는 철물 문양을 아주 복잡하고 많이 부착하여 소재인 나무보다도 외관을 더 돋보이게 하였다. 이는 나무의 결 자체가 단조롭기 때문에 장석으로 시각적 완성도를 보완한 결과이다. 반면 느티나무나 먹감나무처럼 결이 아름다운 남부 지역 가구는 나무 자체를 드러내기 위해 장석을 의도적으로 최소화하는 경향을 보인다. 나무와 금속이 어떤 비율로 시선을 나눠 갖는가 — 이 조형적 판단이 지역마다 다르게 축적된 것이 바로 장석의 지역성이다.

 

3. 장석 손상의 실체 — 황동 녹청과 철 부식은 어떻게 다르게 진행되는가

장석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먼저 손상의 화학적 원리를 이해해야 한다. 장석의 재료는 황동, 백동, 철 등 금속별로 부식 반응의 메커니즘이 전혀 다르며, 이 차이가 보존 처리 방법의 선택을 결정한다.

금속유물의 보존처리는 금속의 부식 반응을 지연 및 방지하는데 주된 목적이 있다. 금속유물은 오랜 세월 땅속이나 대기 중에 노출되면서 주위 환경, 온도, 습도 등에 의한 물리적, 화학적인 반응에 의해 부식과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목가구에 부착된 장석은 매장 유물과 달리 대기 중에 노출된 상태에서 수백 년을 버텨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손상은 매장 유물의 것과 유사하지만, 나무와의 접촉면에서 발생하는 복합적인 화학 반응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더 복잡한 양상을 보인다.

황동 장석에서 가장 흔히 발견되는 것은 청록색 녹청이다. 이는 구리(Cu)와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산소, 수분이 반응하여 생성되는 염기성 탄산구리 화합물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녹청이 반드시 제거해야 할 손상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이다. 금속유물 표면에 고착되어 있는 부식화합물과 이물질은 유물을 손상시키고 원형을 알아볼 수 없게 만드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일부 부식화합물은 오히려 코팅막과 같이 내부의 소지금속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기도 한다. 안정화된 녹청층은 내부 황동을 추가 산화로부터 차단하는 자기 보호막 역할을 하기 때문에, 무조건 제거하는 것은 오히려 손상을 심화시킬 수 있다. 전문가들이 녹청을 '활성 부식'과 '안정 부식'으로 구분하여 처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육안으로 확인이 어려운 유물은 X-ray 조사를 실시하여 부식 정도와 재질의 차이, 제작기법, 상감이나 문양의 존재 유무 등을 확인한 후 보존처리 시 활용하고 있다. 특히 장석의 경우 표면 녹층 아래에 당초문이나 투각 문양이 숨겨져 있는 경우가 있어, XRF(X선 형광 분석)나 SEM-EDX(주사전자현미경 분석) 같은 성분 분석이 보존 방향 설정의 핵심 근거가 된다. XRF 및 SEM-EDX분석 결과, 금색 표면은 구리(Cu), 아연(Zn)이 주성분으로 검출되어 황동으로 추정되었다는 식의 분석 결과가 복원 재료 선택의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

나무와 장석이 접하는 경계면은 특히 주의가 필요한 부분이다. 장석을 고정하는 철제 나사나 못이 수분과 반응하면 철분이 나무 섬유로 스며들어 적갈색 착색 현상을 일으킨다. 이 철 이온 착색은 화학적 방법으로도 완전히 제거하기 어려우며, 동시에 나무 내부 섬유의 산성화를 촉진하여 목재 자체의 강도를 떨어뜨린다. 역설적으로 이 착색 흔적은 복원 과정에서 원래 장석의 위치와 크기를 추정하는 핵심 단서가 되기도 한다. 장석이 완전히 분실된 자리에 남아 있는 금속 착색 흔적과 나사 구멍의 패턴은, 원형 복원의 출발점이 된다.

 

4. 두석장의 손, 보존과학의 눈 — 전통 단조 기법과 현대 비파괴 분석이 협력하는 복원 현장

장석 복원은 전통 기술과 현대 과학이 가장 밀도 높게 협력해야 하는 분야다. 두석장의 단조 기술 없이는 원형에 가까운 재제작이 불가능하고, 보존과학의 분석 없이는 손상 원인 진단과 처리 방향 설정이 불가능하다.

전통 두석 제작의 핵심은 두드림이다. 먼저 주석이나 백동을 넣어 가열해 녹이고 이것을 망치로 두들겨 0.5mm 두께의 판철로 늘이고 면을 반듯하게 다듬는다. 여기에 본(밑그림)을 따라 작도와 정으로 오리고 줄로 다듬고 활비비(송곳으로 구멍을 뚫는 활 모양의 도구)와 정으로 문양을 새긴 뒤 사기분말을 묻힌 천으로 문질러 광택을 내 완성한다. 이 공정은 기계 가공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손 기술이다. 두드려서 늘이는 과정에서 금속 내부 결정 구조가 압밀되며 강도가 높아지고, 정으로 새긴 문양의 단면에는 기계 가공의 균일함과 다른 미세한 불규칙성이 생긴다. 이 불규칙성이 전통 장석 특유의 생동감 있는 질감을 만들어낸다.

국가무형유산 두석장 보유자인 박문열 두석장의 사례는 이 복원 작업의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경남 진주의 태정박물관에 19세기 초 단조기법으로 만들어진 7단짜리 자물쇠가 있었는데, 당시 관장에게서 사진촬영도 자물쇠의 구조를 그리는 것도 허락을 받지 못해 10여 분 동안 자물쇠를 들여다보면서 머릿속으로 그 형태를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작업을 시작하여 10일만에 그 중요한 실마리를 찾아내어 완성하였다. 이 일화는 전통 장석 복원이 얼마나 고도의 관찰력과 추론 능력, 그리고 실제 제작 경험을 동시에 요구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부여 정림사지의 황동철물장석, 양산 통도사 대웅전 금강계단의 비녀쇠 돌쩌귀, 안동 봉정사 대웅전 등자쇠, 영광 불갑사 대웅전의 철물, 구인사 조사전의 철물 등 사찰 곳곳에 박문열 두석장의 작품들이 남아 있다. 이 목록은 두석장의 작업이 민간 가구 복원에 그치지 않고 국가 지정 문화유산의 실제 현장 복원에 직접 관여하고 있다는 것을 구체적인 사례로 증명한다.

보존과학 쪽에서는 비파괴 분석 기술이 복원의 근거를 쌓아간다. 비파괴 조사로 육안으로 확인되지 않는 형태 및 구조, 부식 정도를 파악하고(X-ray, CT 등), 재질 및 부식 화합물의 특성 분석(XRF, XRD 등)을 실시한다. 이런 분석을 통해 장석 표면 아래에 숨겨진 문양의 형태, 합금 비율, 부식 깊이를 물리적 해체 없이 파악할 수 있다. 황동 장석의 구리·아연 비율을 XRF로 분석하면, 조선 전기와 후기 사이에 합금 구성이 달라졌다는 사실도 확인된다. 이 데이터는 복원 재제작 시 원본과 동일한 합금 비율을 사용해야 한다는 근거가 된다.

보존처리 단계에서는 재료 선택도 엄격하다. 걸쇠는 에틸알코올을 이용하여 세척한 후 Air-brasive를 이용하여 녹을 제거하였다. 그 다음은 Paraloid B72(in acetone) 5% 용액을 도포하였다. Paraloid B72는 국제적으로 문화재 보존 처리에 가장 널리 사용되는 아크릴계 수지 코팅제로, 금속 표면에 안정적인 보호막을 형성하면서도 향후 재처리를 위해 아세톤으로 다시 제거 가능한 가역성을 지닌다. 가역성은 현대 문화재 보존 처리의 핵심 원칙 중 하나다.

 

5. 복원인가, 위조인가 — 장석 재제작의 윤리 기준과 가역성 원칙

장석 복원에서 가장 까다로운 질문은 기술이 아니라 윤리의 영역에서 나온다. 분실된 장석을 새로 만들어 달면 가구는 완전해 보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복원인가, 아니면 역사를 덮어쓰는 행위인가.

보존처리 과정에서 확인된 제작기법상의 특징과 학술적 내용, 사용된 약품과 기기, 중량, 변화된 형태 등을 기록한다. 보존처리가 완료된 유물은 불투과성 비닐에 제습제를 함께 넣어 밀봉 포장한 후 항온·항습시설이 갖춰진 수장고에 보관한다. 보존환경에 따라 재부식이 발생할 수도 있으므로 보존처리가 완료된 유물이라도 항온·항습(20±2℃, 상대습도 45% 이하)의 조건에서 보관하는 것이 안전하다. 이처럼 처리 이후에도 문서화와 환경 관리가 지속되어야 한다는 원칙은, 복원이 단발적인 수리 행위가 아니라 지속적인 관리 체계임을 의미한다.

복원 장석과 원본 장석 사이의 구별 가능성 문제는 특히 중요하다. 국제 문화재 보존 원칙인 베니스 헌장(1964)은 복원 부분이 전체적으로는 조화를 이루면서도, 가까이서 살펴보면 복원 부분임을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고 명시한다. 장석 복원에서 이 원칙을 적용하면, 재제작한 장석의 표면을 인위적으로 산화시켜 기존 장석과 유사한 색조로 맞추되, 질감이나 문양의 미세한 차이는 남겨두는 방식으로 구현된다. 동일하게 보이도록 완벽하게 재현하는 것은 복원이 아닌 복제이며, 유물의 역사성을 지우는 행위로 평가된다.

또 하나의 핵심은 **가역성(可逆性)**이다. 오늘의 복원 판단이 훗날 잘못된 것으로 판명될 수 있다. 그래서 복원에 사용된 모든 재료와 방법은 미래의 보존처리자가 되돌릴 수 있어야 한다는 원칙이 현대 문화재 보존의 근간을 이룬다. 이는 장석 복원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무에 새 장석을 고정할 때 사용하는 접착 보조재, 표면에 도포하는 보호 코팅제 모두 가역성이 확인된 재료여야 하며, Paraloid B72가 이 조건을 충족하는 대표적인 재료로 현장에서 폭넓게 사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석 복원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많이 부딪히는 문제는 원형 정보의 불충분함이다. 장석이 분실된 자리에 남겨진 착색 흔적과 구멍 위치만으로 원형을 재현해야 하는 경우, 복원 전문가는 동시대 유사 가구의 장석 자료, 박물관 소장 유물 도록, 두석장의 구전 지식 등 가용한 모든 자료를 종합하여 추정 복원을 수행한다. 이때 추정 복원임을 명확히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 복원 윤리의 기본 요건이다. 단정적 재현이 아니라 '추정에 근거한 복원'임을 기록하는 행위 자체가, 미래의 더 정확한 복원을 위한 정직한 토대를 만드는 일이다.

 

6. 장석 복원이 지금 왜 중요한가 — 소멸 위기의 두석 기술과 계승의 현실

장석 복원이 단순한 수리 기술을 넘어서는 이유는, 그것이 소멸 위기에 처한 무형 기술의 마지막 실천 현장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전통 공예 중에서 계승자가 많지 않아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두석이다. 두석장은 국가무형유산으로 지정되어 있지만, 지정 자체가 기술의 생존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통영에서 나고 자란 김극천 선생의 집안은 4대째 대대로 두석의 일을 하여 왔다. Kh 4대에 걸친 가업이라는 사실은 이 기술이 얼마나 오랜 시간의 축적을 필요로 하는지를 보여주는 동시에, 이런 가업 체계가 더 이상 일반적이지 않은 현대 사회에서 기술 단절의 위험이 얼마나 현실적인지를 암시한다.

두석 작업의 어려움은 기술만이 아니다. "장석이 아름다울수록 두석장의 손은 거칠어진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긴 시간과 공을 들여 손품을 팔아야 하는 작업이다. 0.5mm 두께의 황동 판을 손으로 두드려 만들고, 정으로 세밀한 문양을 새기는 이 작업은 기계화될 수 없다. 기계로 찍어낸 장석은 형태는 모방할 수 있지만 두드림의 흔적, 정의 떨림, 표면의 미세한 질감 차이를 담아낼 수 없다. 전통 장석을 구별하는 전문가의 눈이 가장 먼저 읽어내는 것이 바로 이 손의 흔적이다.

현재 국가유산진흥원에서 운영 중인 한국전통공예건축학교에서 장석반을 개설해 전통 기술을 익힐 제자들을 양성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이런 공식 교육 채널이 존재한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지만, 교육을 이수한 것과 독립적으로 복원 현장에서 실제 장석을 재현할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하는 것 사이에는 여전히 긴 시간과 실천의 간격이 존재한다.

장석 복원이 지금 중요한 또 다른 이유는 전통 목가구의 재평가 흐름과 맞닿아 있다. 조선 가구의 절제된 조형 원리와 기능미가 국제 디자인계에서 재조명되면서, 그 가치를 실제로 뒷받침하는 기술적 기반인 장석 복원과 두석 기술에 대한 관심도 함께 높아지고 있다. 가구의 나무 재질이나 빛깔, 문양에 따라 장석의 재료는 달라진다. 고리나 자물쇠가 부딪치는 부분이 상하지 않도록 보호하며, 못을 사용하지 않고 결구(짜맞추기)로 제작하는 전통 가구에서 결구 부분을 감싸 보강하는 구실까지 한다. 이 문장이 담고 있는 것은 단순한 기능 설명이 아니다. 나무와 금속이 못 하나 없이 서로를 지탱하며 수백 년을 버텨온 방식, 그 구조적 지혜가 오늘날 우리에게 전통 가구의 장석이 여전히 배울 것이 있는 기술임을 말해주고 있다.

장석 하나를 복원한다는 것은 그것이 달려 있던 나무 위의 자리를 되찾아주는 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 금속 조각을 만든 장인의 손끝에 새겨진 기술의 언어를 다시 읽어내는 일이기도 하다. 그 언어가 끊기지 않도록 기록하고, 실천하고, 전달하는 것 — 그것이 장석 복원이 오늘날 우리에게 요청하는 역할이다.

 

참고 및 인용 자료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장석(裝錫)」, 한국학중앙연구원
  • 국가유산진흥원, 「두석장 박문열」·「두석장 김극천」, 국가유산진흥원 공식 누리집
  • 국가유산청, 「쇠에 새긴 정교한 아름다움, 장석」, 『월간 국가유산사랑』
  • 국립민속박물관, 「쓰임에 미감과 바람을 담다」, 웹진 민속소식 (2020.06)
  • 문화유산보존과학센터, 「금속문화유산 보존처리」, 국립문화유산연구원
  • 문화재조사연구단, 「유물보존처리 방법」,
  • 국가유산청, 「생활양식이 깃든 전통 생활소품」, 『월간 국가유산사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