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 공예

부식된 전통 은기, 원형 복원은 어떻게 가능할까?

info-ytt 2026. 2. 27. 17:00

목차

  1. 은기, 단순한 그릇이 아닌 역사의 기록
  2. 은이 부식되는 이유 — 황화반응의 과학
  3. 전통 은기 복원의 단계별 과정
  4. 복원에 사용되는 도구와 재료의 세계
  5. 현대 기술과 전통 기술이 만나는 지점
  6. 복원 후 관리와 보존의 원칙
  7. 마무리: 은기 복원이 남기는 것

1. 은기, 단순한 그릇이 아닌 역사의 기록

은기(銀器)는 한국의 전통 금속 공예 가운데서도 유독 특별한 위치를 차지해온 유물이다. 조선 왕실의 수라상에 올랐던 은수저, 사대부가의 연회에서 쓰인 은잔, 제례를 위해 정성스럽게 제작된 은향로까지. 은이라는 금속이 인간의 일상과 의례 양쪽에 깊게 뿌리내려 있었다는 사실은, 단순히 재료의 희귀성 때문만은 아니었다. 은은 항균성이 뛰어나고, 음식 속 독소를 감지할 수 있다고 여겨졌으며, 그 자체가 권위와 청결함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세월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 수백 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은기는 점차 검게 변해가고, 표면은 거칠어지며, 정교하게 새겨진 문양은 희미해진다. 우리가 박물관이나 고택에서 흔히 접하는 까맣게 변색된 은제 유물들은, 사실 그 안에 원래의 형태와 광택, 문양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그것을 얼마나 정확하게, 그리고 얼마나 안전하게 끄집어낼 수 있느냐다.

전통 은기의 복원은 단지 외관을 닦아 반짝이게 만드는 작업이 아니다. 그것은 유물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점의 의도와 기술 수준, 사용된 재료의 특성, 그리고 시간이 그 위에 남긴 흔적까지를 종합적으로 이해하는 데서 시작한다. 이 글에서는 은기가 부식되는 과학적 원리부터 실제 복원 현장에서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그리고 복원 이후의 보존까지를 단계적으로 살펴본다.

 

 

2. 은이 부식되는 이유 — 황화반응의 과학

은기가 검게 변하는 현상을 보고 많은 사람들이 흔히 '녹슬었다'고 표현하지만, 이는 정확한 표현이 아니다. 철이 산소와 반응해 산화철(붉은 녹)을 형성하는 것과 달리, 은의 변색은 주로 황화반응(sulfidation)에 의해 발생한다. 공기 중에 미량으로 존재하는 황화수소(H₂S) 또는 이산화황(SO₂) 같은 황 화합물이 은의 표면과 반응하면, 검은색의 황화은(Ag₂S) 층이 형성된다. 이것이 바로 은기 표면에 생기는 특유의 흑변(黑變) 현상이다.

황화반응은 매우 다양한 환경에서 발생할 수 있다. 계란 노른자, 양파, 마늘처럼 황 성분이 많은 음식과의 접촉이 대표적이고, 고무 제품이나 라텍스 장갑, 심지어 일부 천연 섬유에서도 황 성분이 방출될 수 있다. 또한 도시 대기 오염, 산성비, 토양 속에 있는 유기물 분해 산물도 은의 황화를 촉진시키는 원인으로 작용한다. 유물이 오랜 세월 땅속에 매장되어 있었다면 황화 외에도 염화물, 유기산, 수분의 복합 작용으로 인해 훨씬 심층적인 부식이 진행된 경우도 많다.

중요한 점은, 황화은(Ag₂S) 층은 철의 녹과 달리 표면에 매우 밀착되어 형성된다는 것이다. 철의 녹은 부피가 팽창하며 금속을 안쪽에서부터 밀어내듯 파괴하지만, 황화은은 오히려 그 아래 은 표면을 더 이상 산화되지 않도록 막아주는 보호막 역할을 하기도 한다. 물론 이것이 영구적인 보호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장기간 방치하면 황화 층이 두꺼워지면서 문양을 덮어버리고 금속 구조 자체를 약화시키는 문제가 생긴다.

따라서 복원 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부식의 유형과 깊이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다. 단순한 표면 흑변인지, 아니면 금속 내부까지 부식이 진행된 심층 손상인지에 따라 접근 방식이 전혀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 단계에서 X선 형광분석(XRF), 적외선 분광법, 실체현미경 등 현대 과학 장비가 활용되며, 이를 통해 은의 함량, 합금 비율, 부식층의 두께와 성분까지 정밀하게 파악할 수 있다.

 

3. 전통 은기 복원의 단계별 과정

전통 은기의 복원은 크게 사전 조사 → 세척 및 탈부식 → 결손부 보강 → 표면 마감 → 보존 처리의 다섯 단계로 나뉜다. 각 단계는 순차적으로 진행되며, 이전 단계의 결과가 다음 단계의 방식을 결정하는 긴밀한 연결 구조를 가지고 있다.

사전 조사 및 기록화는 복원의 출발점이다. 유물의 현 상태를 육안과 장비로 꼼꼼히 기록하고, 사진, 실측 도면, 성분 분석 데이터를 축적한다. 이 기록은 복원 작업 중 판단의 기준이 되며, 복원 후에도 유물의 이력 관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원형 복원의 핵심은 '추측'이 아닌 '근거'에 기반한 작업이기 때문에, 이 단계에서 얼마나 정밀한 데이터를 확보하느냐가 전체 복원의 수준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척 및 탈부식 단계는 복원 작업 중 가장 섬세한 기술이 요구되는 부분이다. 은기 표면의 황화은 층을 제거하는 방식에는 크게 화학적 방법, 전기화학적 방법, 물리적 방법이 있다. 화학적 방법은 티오요소(thiourea) 계열의 약액이나 아황산나트륨 용액을 사용해 황화은을 선택적으로 용해시키는 방식이다. 전기화학적 방법은 알루미늄 포일과 탄산나트륨 용액을 이용한 환원 반응으로, 황화은을 다시 금속 은으로 되돌리는 원리를 활용한다. 물리적 방법은 부드러운 솔이나 면봉, 목제 도구를 이용해 손으로 직접 제거하는 방식으로, 문양이 복잡하거나 표면이 취약할 때 선택적으로 사용된다. 실제 복원 현장에서는 이 세 가지 방법을 유물의 상태와 부식의 깊이에 따라 조합해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결손부 보강은 금속이 유실되거나 변형된 부분을 복원하는 작업이다. 은기는 도자기와 달리 금속이기 때문에 단순 접착으로는 복원이 불가능하다. 유실된 부분의 형태를 추정하기 위해 동일 시대의 유사 유물을 참고하고, 경우에 따라 3D 스캐닝과 디지털 모델링을 활용해 소실 부위의 형태를 시뮬레이션한 뒤 복원용 은 판을 제작해 삽입한다. 접합부는 시각적으로 구분이 가능하되 전체적인 통일감을 해치지 않도록 처리하는 것이 복원 윤리의 기본 원칙이다.

표면 마감은 은기 고유의 광택과 질감을 되살리는 단계다. 전통적으로는 사슴 가죽이나 부드러운 면포에 백악(白堊, 탄산칼슘)을 묻혀 문지르는 방식이 사용되었다. 현대 복원에서는 이와 함께 전동 연마기, 다이아몬드 페이스트, 고운 사포 등을 활용하기도 하지만, 문양 부위는 반드시 수작업으로 처리해야 미세한 선각(線刻)의 손상을 막을 수 있다. 마감 후의 광택은 원래 유물이 지녔던 수준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며, 과도하게 반짝이는 복원은 오히려 유물의 연대감과 문화적 맥락을 훼손할 수 있다.

 

4. 복원에 사용되는 도구와 재료의 세계

전통 은기 복원에는 현대의 첨단 분석 장비부터 장인의 손에 맞춰진 수공구까지, 다양한 도구와 재료가 동원된다. 이 중 어느 것도 단독으로는 완전한 복원을 이룰 수 없으며, 각각의 역할이 유기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원형에 가까운 결과물이 탄생한다.

분석 단계에서 가장 핵심적인 장비는 X선 형광분석기(XRF)다. 이 장비는 유물에 X선을 쏘아 표면에서 방출되는 형광 X선을 분석함으로써 금속의 원소 구성비를 비파괴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이를 통해 유물의 은 함량, 구리나 주석 등 합금 원소의 비율, 도금 층의 유무 등을 파악할 수 있다. 유물을 훼손하지 않고도 성분을 알 수 있다는 점에서 복원 전 필수 과정으로 자리 잡았다. 실체현미경(Stereo Microscope)은 최대 수십 배 확대를 통해 표면의 미세한 균열, 문양의 선 폭, 부식층의 분포 등을 관찰하는 데 쓰인다.

탈부식 과정에서 사용되는 재료는 유물의 상태에 따라 매우 다양하다. 경미한 황화 처리에는 시트르산(구연산) 수용액이나 EDTA 수용액이 사용되고, 좀 더 깊은 부식에는 티오요소 기반의 전문 세척제가 쓰인다. 모든 약액은 적용 전 유물의 일부 비가시 영역에서 반응 테스트를 거치는 것이 원칙이며, 반응 시간과 농도는 밀리리터, 초 단위까지 세밀하게 조절된다. 이처럼 복원용 약액의 사용은 단순한 화학 지식이 아닌, 다년간의 현장 경험이 축적되어야 가능한 고도의 판단 작업이다.

수공구의 세계도 예사롭지 않다. 단면이 다양한 조각도, 돌기 하나를 세우기 위한 타출봉(打出棒), 표면 결을 정리하는 버니셔(burnisher), 문양의 선을 따라 움직이는 극세 면봉까지. 이 도구들은 대부분 기성품이 아닌 복원가 본인이 직접 제작하거나 오랜 사용으로 손에 길들여진 것들이다. 특히 선각 문양이 있는 은기를 다룰 때는 수십 가닥의 머리카락 두께보다 좁은 홈 안으로 도구를 정확히 집어넣어 이물질을 걷어내야 하기 때문에, 도구의 선택과 사용법이 복원의 질을 직접적으로 결정한다.

결손부 복원에 사용되는 재료도 까다롭다. 원 유물의 성분 분석을 토대로 최대한 가까운 합금 비율의 순도 높은 은판을 조달해야 하며, 접합에는 가역성이 보장되는 접착제를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가역성'이란 향후 더 나은 기술이나 재료가 개발되었을 때 다시 분해하고 재복원할 수 있도록, 현재의 처리가 영구적이지 않게 설계되어야 한다는 복원 윤리의 핵심 개념이다. 에폭시 계열의 비가역성 접착제는 일반적으로 지양되며, 파라로이드 B-72처럼 용제에 다시 녹일 수 있는 가역성 수지 접착제가 선호된다.

 

5. 현대 기술과 전통 기술이 만나는 지점

최근 수십 년 사이, 전통 은기 복원의 현장은 눈에 띄게 달라졌다. 가장 큰 변화는 디지털 기술의 도입이다. 3D 스캐닝 기술은 유물의 형태를 수천만 개의 점 데이터(포인트 클라우드)로 정밀하게 기록하며, 이를 기반으로 결손 부위의 형태를 추정하고 디지털 모델을 완성할 수 있다. 완성된 3D 모델은 CNC 가공이나 3D 프린팅을 통해 실물 모형으로 출력할 수 있고, 이 모형을 주형으로 삼아 실제 복원용 금속 부품을 주조하는 방식도 활용된다.

적외선 반사 촬영(Infrared Reflectography)과 자외선 형광 촬영(UV Fluorescence)은 육안으로 보이지 않는 표면의 정보를 시각화하는 데 쓰인다. 자외선 촬영의 경우, 이전에 처리된 복원 부위와 원 유물 부위가 다른 형광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과거 복원 이력을 파악하는 데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 또한 초음파 두께 측정기는 은기 벽면의 두께 분포를 비파괴적으로 확인해 금속이 내부에서 얼마나 약화되었는지를 평가하는 데 활용된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했다고 해서 전통적인 손 기술의 중요성이 줄어든 것은 아니다. 오히려 디지털 분석이 정밀해질수록 실제 복원 작업에서 요구되는 수작업의 기준도 높아졌다. 예를 들어, 3D 스캐닝으로 문양의 형태를 0.01밀리미터 단위까지 파악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만큼 복원 후 오차도 그 수준에 맞게 좁혀져야 한다는 뜻이다. 디지털 기술은 복원가의 작업을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정밀도를 요구하면서 함께 발전하는 관계에 있다.

또한 전통 장인의 지식이 현대 복원에 기여하는 방식도 중요하다. 예를 들어, 은기 제작 시 사용된 전통적 타출(打出) 기법 — 금속판을 두드리고 늘려 형태를 만드는 방식 — 은 현대 복원가들이 직접 재현해보지 않으면 그 감을 이해하기 어렵다. 실제로 국립문화재연구소나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같은 기관에서는 전통 금속 공예 장인과 복원 연구자가 협력하는 프로젝트를 운영하며, 이를 통해 제작 기법에 대한 실물 지식이 복원 연구에 통합되고 있다.

 

6. 복원 후 관리와 보존의 원칙

복원된 은기를 올바르게 보존하지 않으면 복원 작업이 무색해지는 경우가 생긴다. 은기의 재부식을 방지하고 복원된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보관 환경의 관리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가장 핵심적인 조건은 온습도 관리다. 상대습도 45~55%, 온도 18~22°C 범위가 일반적으로 금속 유물 보존에 적합한 환경으로 권장된다. 습도가 높으면 은 표면의 황화 반응이 가속되고, 너무 낮으면 금속 구조에 미세한 응력이 생길 수 있다. 또한 빛, 특히 자외선은 접착제나 표면 코팅을 열화시킬 수 있기 때문에 직사광선 차단도 필수 조건이다.

보관 용기와 포장재의 선택도 매우 중요하다. 황 성분을 함유한 고무나 라텍스 소재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되며, 산성이 없는 아카이벌 티슈나 폴리에틸렌 폼으로 감싸는 것이 기본이다. 항황화 처리(anti-tarnish) 종이나 3M의 황화 흡수 패드를 케이스 내에 함께 넣어두면 주변 공기 중의 황 화합물을 흡착해 재변색을 늦출 수 있다. 전시 목적으로 진열장에 보관할 경우에는 진열장 내부에 실리카겔과 항황화 처리제를 함께 두어 마이크로 환경(microclimate)을 조성하는 방법이 활용된다.

일반 가정에서 소장하는 전통 은기라면 취급 시 반드시 면장갑을 착용해야 한다. 손의 땀에 포함된 염분과 지방산이 은 표면에 남아 황화를 촉진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기를 닦을 때는 전용 폴리시나 극세사 천을 사용하되, 문양이 있는 부분은 문지르기보다 가볍게 눌러주는 방식으로 관리해야 미세 조각의 마모를 막을 수 있다. 복원된 유물일 경우 취급 전에 복원 전문가나 박물관 담당자에게 관리 방법을 별도로 확인하는 것이 가장 안전하다.

 

7. 마무리: 은기 복원이 남기는 것

부식된 전통 은기 하나를 복원하는 데는 짧게는 수주, 길게는 수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그 시간 동안 복원가는 분석 데이터를 들여다보고, 약액을 조절하며, 마이크로미터 단위의 손 움직임을 반복한다. 이 과정은 단순히 낡은 물건을 새것처럼 만드는 일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복원의 목표는 '새것처럼'이 아니라 '처음처럼', 즉 그것이 처음 만들어지던 시점의 상태와 의도를 최대한 가깝게 재현하는 것이다.

전통 은기는 제작 당시의 장인이 어떤 도구를 사용했는지, 어떤 합금 비율을 선택했는지, 어떤 문양을 새겨 어떤 의미를 담으려 했는지를 기록한 물리적 문서다. 그 문서를 해독하고 보존하는 것이 복원이라면, 복원가는 일종의 번역가다. 과거와 현재 사이에서 금속의 언어를 읽고,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전달 가능한 형태로 옮겨 적는 사람.

오늘날 전통 은기 복원의 현장에는 전통 장인의 감각과 현대 과학의 정밀함이 함께 존재한다. 어느 쪽이 더 중요한가를 묻는 것은 의미가 없다. 황화반응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하면 부식층을 제대로 다룰 수 없고, 타출과 선각의 손 감각이 없으면 데이터는 그저 숫자로 남는다. 결국 은기 복원은 과학과 기술, 역사와 예술이 한 점에서 만나는 작업이다. 그리고 그 작업을 통해 사라질 뻔했던 역사가 다시 빛을 회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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